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책제목 :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작가 : 이치조미사키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소재에 아쉬움을 나타냈을 것 같다. 사실상 소재가 같기 때문이다. 남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주인공이 사실은 매일매일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앓고 있으며, 날마다 기억하기 위해 메모 또는 동영상을 제작한다는 것. 그러한 장애를 앓고 있음에도 남자주인공이 끝까지 여자주인공을 사랑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줄거리]
가난하면서도 평범하게 살아온 고등학생 주인공(도루)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아버지 덕분에 주인공(도루)은 단단하게 살아오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서 일진 학생들에게 나서게 된다. 일진 학생들은 앞으로 그 친구를 안 괴롭힐 테니 한가지 제안을 한다. 다른 반의 예쁜 여자인 히노에게 장난으로 고백하라는 것. 즉 망신당하기를 당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백을 하게 되는데.... 히노는 도루의 고백에 차갑게 거절하지 않고 특정한 조건을 붙여서 승낙을 하게 된다.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본인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것. 도루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지만, 점차 친해지게 되고 히노의 절친 이즈미 까지 더해져 세명이서 친해지게 된다. 도루의 집에 가서 차도 마시게 되고, 히노의 집에도 가고 전형적인 사랑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잠만 자고 나면 전날의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히노의 장애를 도루가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더욱 전개된다. 히노의 기억장애는 다른 아이들 교통사고로부터 구함으로써 시작된 사고장애였다. 그 장애는 그림실력은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즉 몸이 기억하고 있는 패턴은 기억할 수 있는데 도루는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히노의 기억장애를 돕고자 한다. 물론 히노는 도루가 본인의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유사연애라는 조건으로 시작한 연애이지만, 도루는 히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히노와의 추억은 계속해서 쌓여가지만, 본인만 그 감정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점. 히노는 메모를 통하여 어떠한 기분을 느꼈는지 공부는 하겠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기게 되었지만, 도루는 도루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어느날 도루는 엄마의 유전을 받아서인지 심장이 아파 사망하게 된다. 가족들은 히노를 위해서 도루의 흔적을 지워 히노는 도루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미술 실력을 향상한 히노는 그 실력을 바탕으로 대학을 진학할 정도가 되었다. 감정부터 조금씩 과거를 기억해가면서 히노는 과거에 대한 여러 단서를 찾아 나서게 되며 기억을 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동시에 도루와의 모든 추억에 대해서 기억하게 되며 도루의 사망소식까지도 알게 된다. 히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도루가 있지만, 결국에는 감정을 이겨내고 히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여자 주인공이 기억장애라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풀어져 가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그때의 내용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기억해야 한다. 그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건 기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내용을 벗어나서도 추억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같은 설정의 영화가 있다. 장애를 극복한 많은 소재의 영화나 책들이 있다. 그 중 ‘첫 키스만 50번째’는 설정이 아예 똑같다고 보면 되고, ‘비포선라이즈’도 여주인공이 햇빛을 보지 못하여 밖으로 못 나가는 점에서 내용은 비슷하다. 즉, 장애를 기반으로 한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남자 주인공이 너무 허망하게 죽었다. 전형적인 결말이라면 (1)남자 주인공이 죽고 그 아픔을 통해 여자가 결국 장애를 이겨내는 것 (2)남녀가 아픔을 이겨내고 장애를 극복하는 것인데, 조금 더 극적으로 남자 주인공을 사망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단순히 유전적인 병적인 이유로 죽은 것 보다는 여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또는 사건을 통한 죽음이 좀 더 극적인 연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너무 어렵다. 앞서 소개한 내용은 이름을 최대한 간략하게만, 최소의 인물만 썼으나, 여러 인물이 나오며, 어떨 때는 성만, 어떨때는 이름만 나오는 식이라 작품의 몰입에 방해되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김형준이면 어떨때는 ‘형준’이라고 나오고 어떨때는 ‘김’이라고 나오게 되는데, 이게 한 명이 아니라 모든 주인공이 그렇게 되다 보니까 한국인으로서는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한국에 없는 일본 특유의 문화라고는 하지만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책을 한 번에 다 읽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며칟날에 걸쳐서 나눠서 읽었더니 엄청나게 헷갈렸다.
단 한 명의 관점에서만 소설을 풀지 않아서 색달랐다.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책을 서사했을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의 관점에서 소설을 풀어서 주인공들의 제각각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히노)의 장애를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남자친구(도루), 남자친구(도루)가 여자친구(히노)의 장애를 알고 있지만 모른척해 주는 여자친구의 절친(이즈미), 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친구의 각각의 관점을 보여주는 점은 아주 좋았다.